-혼인평등을 위한 아일랜드의 헌법 개정 사례를 중심으로-
2023년 8월 평등세상 가족구성권 포럼 발표
시작된 변화
2015년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 결혼을 도입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2015년 5월 22일 아일랜드는 성별과 무관하게 두 사람이 혼인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명시하는 내용을 담은 제34차 헌법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유권자의 62%가 참여한 투표 결과는 개헌 찬성 62.4%, 반대 37.6%로 집계됨으로써, “결혼은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두 사람이 법에 따라 계약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아일랜드 헌법 제41조에 추가되었다.
아일랜드의 2015년 국민투표는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단지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사례라는 측면을 넘어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가톨릭 국가로 알려진 아일랜드에서 혼인 평등과 같은 진보적 이슈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작 20년 전인 1995년, 이혼 금지 조항 폐지를 위해 시행된 국민투표가 찬성 50.28% 반대 49.72% 결과로 간신히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길이 열렸음을 상기할 때 이는 분명 놀라운 변화다.
가톨릭 신앙과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1995년 국민투표로 이혼에 관한 법률 제정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하기 전까지는 재판상 별거와 같은 제한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률 체계 안에서 결혼 계약을 해소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혼인성사의 불가침성을 근거로 이혼을 반대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아일랜드를 ‘가톨릭 국가’라고 바라보는 시선의 배경은 단지 아일랜드가 오랜 세월 인구의 다수가 가톨릭 신자였던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37년 아일랜드가 채택한 아일랜드 헌법 전문의 첫 문장은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로부터 모든 권위가 나오며, 인간과 국가의 모든 행동은 반드시 그분께 귀속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권위의 원천이자 개인과 국가의 행동이 지향해야 할 목적으로 삼위일체를 제시함으로써 아일랜드의 국가 정체성이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적 토대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다룬 아일랜드 헌법 제44조는 국가는 어떠한 종교도 강요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며(2항),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됨을(3항) 명시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헌법상 권리로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44조 제1항은 “국가는 신의 이름을 경건하게 받들며, 종교를 존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이는 헌법 초안 작성에 영향을 미친 종교적 가치를 상징하며, 특히 아일랜드 민족과 가톨릭교회와 맺어온 역사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되어왔다. 이처럼 근대 국가로서 아일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종교의 다양성을 보호하며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는 동시에 가톨릭교회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 위에 선 자신의 정체성 두 가지 모습 모두를 긍정하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아일랜드의 문화와 법률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이혼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아일랜드처럼 오랜 시간 이혼이 법률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나 비교적 최근 관련 법안이 도입된 국가로 몰타, 칠레가 있고, 필리핀은 여전히 법률상 이혼이 가능하지 않다. 이 국가들은 모두 국민 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며, 가톨릭교회와 국가가 긴밀한 문화적,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가톨릭 국가들이다.
특히 아일랜드의 경우 영국과 분리된 정체성으로서 가톨릭 민족주의가 독립 이후 50여 년간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신앙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일랜드의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였고, 가톨릭교회는 아일랜드라는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일랜드의 사회학자 톰 잉글리스(Tom Inglis)는 가톨릭의 문화와 습성, 가톨릭의 세계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아일랜드의 모든 사회 계층에 스며들었고 종교적 자본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자본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 독립 후 첫 50년 동안 교회와 국가 지도자들은 정당과 무관하게 가톨릭 민족주의 철학에 따라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했다.
일련의 흐름
그렇다면 질문은 이토록 확고하게 가톨릭 신앙의 정체성을 바탕을 둔 나라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은 어떻게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가이다. 특히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로 1995년 이혼 합법화, 2015년 동성혼 합법화, 2018년 낙태죄 폐지를 이뤄낸 일련의 흐름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아일랜드만의 고유한 흐름이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아르헨티나가 2010년 남미 국가 가운데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이어 2013년 우루과이, 브라질, 2016년 콜롬비아, 2019년 에콰도르, 2020년 코스타리카, 2021년 칠레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국가마다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국민의 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며 가톨릭과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유대 관계를 지닌 소위 가톨릭 국가들임에도 이 물결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퍼져나가고 있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경직된 성 윤리와 혼인과 가정에 관한 엄격한 교리를 강조하는 가톨릭 신앙에 뿌리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가 동성혼 합법화를 비롯하여 더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물결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신성한 제도이며, 가정과 사회의 기초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교회는 동성 결합을 포함하도록 결혼을 재정의하려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2003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존중이 결코 동성애 행위에 대한 인정이나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또한 공동선이 요구하는 것은 법이 혼인을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토대로 인정하고 증진하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교황청의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까지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더 나아가 2021년 신앙교리성은 ‘동성 간 결합의 축복과 관련된 의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문서를 통해 동성애자 결합에 대한 축복은 적법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입장을 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을 통해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어떤 식으로든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유사하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결국 동성 혼인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반대는 결혼을 성사로 이해하는 혼인에 관한 가르침에 근거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601항은 혼인 서약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인바,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성사의 품위로 올려졌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 은총의 보이는 표지라고 불리는 칠성사 가운데 하나의 성사로 결혼을 이해한다. 동성 혼인에 관한 반대를 넘어 동성 커플의 결합에 관한 축복까지 반대하는 것은 동성 결합에 관한 축복이 혼인성사로 하나 되는 남녀에게 빌어 주는 혼인 축복을 모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2358항이 동성애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음에도 가톨릭교회는 동성 결혼이나 동성 결합에 대한 축복이 불법임을 선언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의 한 형태도 아니며, 그러한 차별을 의도하는 것도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혼인의 소명은 창조주의 손으로 지으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새겨져 있으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가지 문화와 사회 구조와 사고방식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더라도, 혼인은 단순히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라는 이유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남자는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창세기의 말씀을 가톨릭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처음부터” 창조주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를 환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라”는 말씀에 기인하여 혼인을 열정을 특징으로 하는 우정을 넘어 배타적이고 충실한 관계 안에 죽을 때까지 서로에 속해 있고 생명의 전달에 열려 있으며 성사로 거룩해지는 관계로 이해한다.
아일랜드 교회의 대응
이처럼 가톨릭교회의 혼인과 동성 결합에 관한 가르침은 명확하다.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혼인은 곧 성사이며 결혼은 인간의 제도가 아닌 창조주의 계획이므로 동성 결혼이나 결합을 반대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5년 헌법 개정 당시 아일랜드 주교회의를 중심으로 가톨릭교회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다. 당시 강조했던 메시지 역시 결혼의 의미에 대한 강조였다. 국민투표가 확정되자 아일랜드 주교회의는 “결혼은 중요하다, 바꾸기 전에 성찰하자”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고, 아들과 딸을 둔 젊은 부부의 사진으로 홍보물을 제작하여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 캠페인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통한 자녀의 출산은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이며, 아이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명서는 결혼의 근본적인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성애자의 시민권을 보호하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결혼의 근본적인 의미를 훼손해서는 안 되기에 미래 세대를 위해 결혼의 의미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2010년 제정된 시민 결합 및 생활 동반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을 통해 동성 커플의 법적 인정과 보호를 부여하고 있었기에, 동성애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결혼’의 의미에 관한 재고가 캠페인의 초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시민 결합에 관한 법적 보호는 ‘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결혼한 이성 커플이 누리는 권리와 혜택으로부터 동성 커플을 배제하고 있었다.
2015년 3월 10일 주교회의 명의의 공식 성명서가 발표된 후 아일랜드 각 지역 교구 주교들의 개인 성명도 잇따라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교회의 가르침과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결국 2015년 5월 22일 국민투표에서 아일랜드 헌법은 성별과 무관하게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하도록 개정되었고, 개정법은 11월 16일 발효되어 다음 날인 11월 17일 첫 동성 결혼식이 열렸다.
투표 결과는 사실 예상되었던 바였고, 당시 더블린 교구장이었던 디아무드 마틴(Diarmuid Martin) 대주교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동성혼 합법화를 ‘사회 혁명(social revolution)’이라고 표현하며 “이것은 계속 진행되어 온 사회 혁명이며, 교회는 그동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마틴 대주교는 “결혼의 정의를 바꾸지 않고도 게이와 레즈비언 남녀의 권리가 존중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투표 결과는 가톨릭교회가 특히 성과 혼인에 관련한 가르침에 있어 대중에게 더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함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교회의 책임자들은 교회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현실을 점검해야 할 때이며, 교회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막막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인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국민투표 이후 아일랜드에서 동성 결혼은 더 이상 뜨거운 주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8년 낙태죄 폐지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낙태죄 찬성 즉 낙태 반대 진영은 크게 패배했지만, 낙태 반대 운동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캠페인과 로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혼인 평등에 관한 반대나 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를 이 문제는 이미 탈정치화되었다는 신호이며, 개혁을 되돌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인식의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의 문제를 말할 자격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시민들의 삶에서 그 권위를 잃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사람들은 이제 더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거나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려받은 신앙을 문화적 유산으로만 여기는 세속화 현상은 유럽 전체에 걸쳐 존재하지만 아일랜드에서 그 변화는 다소 급격히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낙태를 처벌하는 직접적 근거가 된 수정헌법 8조는 1983년 가톨릭교회의 요구로 만들어진 조항이었는데, 제정 당시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의 80%는 매주 미사에 참례했으나, 이 조항이 폐지된 2018년에는 그 비율이 20%대에 불과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가톨릭교회가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것이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제 성 추문 스캔들은 아일랜드 교회를 붕괴시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사제에 의한 성적 학대에 대한 보고는 이미 1970년대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4년 브랜든 스미스 신부가 아동 성 학대 혐의로 북아일랜드로 송환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수십 년에 걸친 학대의 패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고 사제의 성 추문 문제를 다뤄온 교회의 대처에 관한 의문 또한 제기되었다.
1995년에는 성직자에 의한 학대에 관한 아일랜드 최초의 공식 조사 보고서 펀스 보고서(The Ferns Report)가 발표됐다. 보고서는 펀스 교구에서 일어난 성직자에 의한 학대 혐의를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교도권이 사제의 성적 학대 및 범죄 사례를 사법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2009년 발표된 라이언 보고서(The Ryan Report)는 아일랜드의 학교와 고아원 등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발생한 학대를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보고서는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의 아동이 겪어 온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를 고발했다.
이처럼 1990년대와 200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사제들의 성 추문과 성적 학대에 관한 폭로가 계속되었고, 오랫동안 교회는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했으며 피해자가 아닌 사제를 보호하려 했음도 드러났다. 이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교회에 관한 신뢰를 크게 잃게 했다. 다수의 아일랜드인은 여전히 스스로를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지만, 특히 성적 도덕성 문제에 관하여는 가톨릭의 교도권을 더는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성과 혼인, 사랑에 관하여 말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단호한 거부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가 성의 문제에 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성에 관해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를 보여온 아일랜드 가톨릭교회의 태도가 상황의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아일랜드 교회는 엄격하게 신자들의 인공피임에 반대하고, 낙태와 이혼을 허용하는 법률에 강하게 맞서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패트릭 헤더만 신부는 아일랜드에서 교회는 섬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려 들며, 국가를 강제 수용소처럼 만들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이 통제는 대체로 섹스에 관한 것이었다. 자위행위를 하면 불결한 사람이 되고, 이는 악마가 작용하도록 허용한 결과라는 죄의식에 시달려 온 많은 이들에게 사제들의 성 추문은 더 큰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Faith for Yes
한편 이미 가톨릭교회 안에서 시작된 분열을 이유로 꼽는 시각도 있다. 주교회의를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은 대체로 동성 결혼에 반대했고, 대다수 사제도 반대표를 행사했다. 국민투표는 언뜻 가톨릭교회와 시민 간의 싸움으로 보였지만,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혼인 평등 권리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피터 맥베리(Peter McVerry SJ) 신부는 2015년 국민투표에서 동성 결혼을 지지한 가장 유명한 가톨릭 가운데 한 명이다. 맥베리 신부는 1983년 노숙자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설립하고, 아파트 한 칸에서 시작한 사도직을 아일랜드 전역으로 확대하며 노숙자와 마약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일로 일생을 보냈다. 불평등과 빈곤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맥베리 신부는 아일랜드에서 가톨릭교회가 잃어버린 도덕적 영향력을 여전히 유지하는 종교인이었다.
맥베리 신부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는 평등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그는 “동성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는 저에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결혼은 본질적으로 국가에 의해 규제되는 민사적 문제이며, 교회는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도덕규범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맥베리 신부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동성애가 본질적으로 무질서하다는 교회의 입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가톨릭교회의 도덕규범을 입법화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시스터 스탠’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니슬라우스 케네디(Stanislaus Kennedy) 수녀도 혼인 평등을 지지했다. 스탠 수녀는 1985년 노숙자를 위한 자선단체를 설립해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해 왔으며,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대통령의 자문기구 아일랜드 국가평의회의 위원으로 활동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종교인이다. 스탠 수녀는 아이리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찬성에 투표할 것임을 밝히며, 성소수자 또한 결혼할 자격이 있어야 하며, 이는 곧 시민권이자 인권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혼인 평등은 오랫동안 차별받아 온 성소수자를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뿐 아니라 아일랜드의 다양한 종교들이 연대하여 평등한 결혼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아일랜드 전역의 종교인들이 모여 ‘Faith for Yes’라는 캠페인 단체를 조직했다. 국민투표를 며칠 앞두고 더블린에서 개최된 ‘Faith for Yes’ 행사에서 개혁 성향의 가톨릭 단체 ‘We Are Church Ireland’의 공동대표 필 호건(Phil Hogan)은 “오는 금요일, 성소수자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예스’에 의해 포용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연대 발언했다.
이처럼 아일랜드 천주교 주교회의로 대표되는 가톨릭교회의 교도권은 이미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상실한 데 반해 혼인 평등에 찬성하는 종교인들은 교회가 잃어버린 윤리적, 도덕적 영향력을 여전히 지닌 존재들이었다. 이들의 Yes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침묵은 여전히 신실한 믿음을 유지하는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이유
가톨릭교회가 강조해 온 혼인에 관한 가르침 덕분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시민 결합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모두가 결혼으로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여겼다는 해석도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단지 생명의 전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배타적 사랑과 자발적 신의로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속하는 거룩한 약속으로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을 강화해 왔다.
대다수가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받은 아일랜드 시민들은 동성 커플이 나누는 것이 본질적으로 교회가 가르쳐 온 혼인의 의미 즉, 배타적 사랑과 자발적 신의,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과 다르지 않다면 그들의 서로를 향한 헌신은 왜 축복받을 수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의 깊은 신앙이 가톨릭교회의 추락과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제도로서 가톨릭교회를 향한 신뢰보다 훨씬 큰 것이었으며, 많은 이들이 교회가 먼저 하느님을 배신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겨진 질문들
대표적 가톨릭 국가로 알려진 아일랜드에서 성, 혼인, 가족에 관한 진보적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교회와 사회의 긴장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세속화, 성소 부족으로 인한 사도직 축소, 교도권의 가르침에 관한 회의적 시선의 증가 등은 종교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해 온 유럽 가톨릭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다만 가톨릭 민족주의 정체성의 약화, 국가 주도의 생명정치에 교회가 깊숙이 관여해 온 역사 등이 아일랜드와 가톨릭교회가 맺어온 특수한 관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1990년대부터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던 성 추문 스캔들은 보수적 성 윤리를 고수하며, 성적 도덕성 문제에 몰두하던 가톨릭교회의 신뢰와 도덕적 권위를 산산이 부수었다. 이 시기 많은 이들이 신앙을 잃었고, 교회에 남은 이들에게도 특히 성 윤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힘이 없었다. 또한 시작부터 국가와 긴밀하게 결탁해온 가톨릭교회는 90년대 이후에는 그 보수성과 엄숙주의로 더 평등하고 열린 아일랜드를 향한 길에 걸림돌로 여겨졌다. 가톨릭교회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의 문화와 동의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여전히 아일랜드는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유지하는 나라기도 하다. 2016년 유럽 22개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분석에 따르면 아일랜드 성인의 36%가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교 예배에 참석한다. 유럽 평균은 12.8%에 불과했다. 이는 인구의 약 90%가 가톨릭 신자이며, 2020년 조사 결과 전체 인구 대비 약 35-40%가 여전히 주일 미사에 참례한다고 알려진 폴란드와 유사한 수치다.
폴란드는 가톨릭 신앙이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아일랜드와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점은 아일랜드와 달리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폴란드 교회 역시 사제 성 추문 스캔들과 교회 당국의 은폐 시도에 대한 거센 비판을 겪어 왔음에도 폴란드의 문화적 스탠스는 대단히 보수적이며 이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폴란드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성소수자 자유구역’을 선언하거나,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정도로 폴란드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편견이 공공연하게 조장되고 있다.
무엇이 아일랜드와 폴란드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일까? 더불어 서론에서 언급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혼인 평등 물결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가톨릭 국가들과의 비교 속에서 2015년 아일랜드의 선택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작업은 남겨진 과제다.
한편 2023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교회를 향한 신뢰의 상실이 진보적 변화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데는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리스도교가 사회의 주류 종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지형 가운데, 교회를 향한 신뢰는 분명 날로 낮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상실이 진보적 변화를 향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신뢰와 영향력은 감소하면서 동시에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거세지는 현실 앞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