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웹진 기고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이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가톨릭 신자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은 1961년 존 F. 케네디에 이어 두 번째다.
가톨릭 대통령의 취임식은 평소와 달랐다. 전통적으로 취임식 아침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의 교회’라 불리는 세인트존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성 마태오 사도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취임식 일정을 시작했다. 취임식을 여는 기도 역시 레오 오도너번 예수회 신부가 맡았다. 오도너번 신부는 지난 2016년부터 미국 JRS(Jesuit Refugee Service, 예수회 난민 봉사기구)를 이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온 오도너번 신부가 취임식 시작 기도를 맡은 것은 달라질 이민 정책에 대한 바이든의 의지를 보여준다.
취임선서에서 바이든이 사용한 성경은 아일랜드 이민자였던 그의 가족이 1893년부터 대대로 전해온 집안의 가보다. 역대 최연소 축시 낭송자이자 이번 취임식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은 아만다 고먼도 가톨릭 신자다.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내각 역시 3분의 1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채워질 예정이다. 국방장관 내정자 로이드 오스틴, 보훈처장으로 내정된 데니스 맥도너, 노동부 장관으로 낙점된 마티 월시 현 보스턴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2월 미국의 공공신학자 스티븐 P. 밀리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 역사상 이보다 더 가톨릭 내각은 없었다(There never has been a more Catholic administration in U.S. history)”라고 남겼다.
바이든의 신앙
바이든의 신앙은 깊고 확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이든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가톨릭 학교에서 수녀님들의 가르침과 보살핌 속에 자랐다. 1972년 첫 번째 아내와 한 살배기 딸, 2015년 큰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을 때도 신앙에서 큰 위로를 받았고 왼쪽 손목에는 항상 먼저 선종한 장남 보가 남긴 묵주 팔찌를 차고 있다. 또한 바이든은 자신의 신앙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이며 특히 신앙으로부터 가톨릭 사회교리의 핵심 원리인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배웠다고 고백한다. 지난 1월 21일 미국 예수회 저널 <아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빌라노바 대학교의 신학교수 마시모 파기올리는 “바이든의 가톨릭 신앙은 진짜”라고 강조했다. 특히 파기올리는 바이든의 가톨릭 신앙은 그의 대선 캠페인에서 중심적인 부분이었다고 분석한다.
바이든의 이런 모습은 존 F. 케네디를 비롯해 가톨릭 신자로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지낸 알 스미스(1928년)와 존 케리(2004년)의 경우와 비교된다.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 케네디와 스미스, 케리의 경우 가톨릭 신앙은 공격의 대상이었고, 그들은 신앙을 사적인 영역으로 두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방어는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나의 신앙은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선거운동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나치에 의해 처형된 예수회 사제 알프레드 델프 등을 언급해 왔다. 파기올리 교수는 복음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는 바이든의 모습을 선거 유세나 캠페인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은 미국인들이 항상 조 바이든에게서 보아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신앙은 그의 삶과 정치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조 바이든 정부를 맞이하는 미국 가톨릭교회 안의 긴장
역설적으로 바이든은 자신의 신앙과 관련한 어려움을 주로 가톨릭교회 안에서 마주한다. 존 F. 케네디의 경우와는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케네디는 가톨릭 신앙으로 공격받았지만 적어도 미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그의 당선은 자부심과 통합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경우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그가 가톨릭이라는 것은 문제 되지 않지만 미국 가톨릭교회의 주교들, 성직자들 그리고 신자들에게 그가 가톨릭이라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바이든의 취임식이 있었던 1월 20일 미국 주교회의가 호세 고메스 주교회의 의장의 서명으로 발표한 성명서는 특히 논쟁적이다. 이 성명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낙태, 피임, 결혼, 젠더의 문제에 있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특정 정책을 추구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정책을 비난하고자 취임식 당일 강한 표현을 동원한 긴 성명서를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시카고 대교구의 커피치 추기경은 즉각 별도의 성명을 냈다. 커피치 추기경은 “주교회의 성명서는 주교들의 정상적인 협의 절차 없이 발표되었다”고 비판하며, “새 정부가 세계적 대유행과 경제적 위험, 깊은 분열의 시기에 시작되지만, 함께 꿈을 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영감을 얻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뉴어크 대교구의 토빈 추기경, 샌디에이고의 로버트 맥 엘로이 주교 등도 잇따라 바이든 정부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별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 상황에서 특히 빈곤층과 취약계층의 권리와 존엄을 위하며 진정한 정의와 자유가 있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는 내용의 짧은 인사말을 공개했다.
바이든의 취임에 부쳐 발표된 미국 주교회의 성명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 가톨릭교회 안의 긴장과 갈등을 보여준다. 바이든은 낙태, 동성결혼에 관한 입장으로 미국 가톨릭교회와 불화를 겪어왔다. 바이든의 낙태에 대한 입장은 가톨릭 신자로서 낙태에 반대하지만, 이 개인적 믿음에 따른 견해를 사회나 다른 개인에게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낙태에 반대하지만, 낙태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바이든은 낙태 자유화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유세차 방문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본당에서 면전에서 영성체를 거부당했다. 당시 성체 배부를 거부한 로버트 모리 신부는 “낙태를 옹호하는 자는 교회 가르침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인터뷰했다.
그러나 이런 태도에 대한 우려 또한 많다. 로버트 맥 엘로이 주교는 바이든의 낙태에 대한 입장 때문에 그가 진정한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일부 주장을 비판해왔다. 맥 엘로이 주교는 구체적인 정책 입장 때문에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가톨릭교리와 하느님 사랑의 크고 다차원적인 은총을 단일한 문제로 축소시킨다고 말한다. 특히 이러한 태도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모욕적이며, 낙태가 본질적인 악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이는 낙태에 관한 개별법을 제정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강조한다.
바이든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종류의 가톨릭’인가?
미국의 가톨릭 유권자들은 가톨릭 후보를 얼마나 지지했을까? <워싱턴포스트>의 출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의 주 지지층은 △흑인·히스패닉·라틴·아시안 △여성 △대졸자 △18~29세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무종교’다. 워싱턴포스트는 인종 불평등 문제와 코로나19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바이든의 주 지지층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계층은 백인, 기독교인으로 백인 가톨릭 신자 출구 조사 결과는 트럼프 56%, 바이든 42%로 트럼프가 앞섰다.
다시 마시모 파기올리 교수의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그는 “지금 이 나라에서 종교적 정체성을 이끄는 것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 개신교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가톨릭 신자, 어떤 종류의 개신교 신자, 어떤 종류의 정교회 신자가 되느냐 함”임을 짚는다. 조 바이든은 가톨릭이지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대신한, 낙태와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성소수자 권리에 비판적이며 트럼프 정부의 반 이민정책에 우호적인, 새로운 연방대법관 에이미 코니 배럿 역시 가톨릭이다.
조 바이든의 행정부는 ‘아주 가톨릭적 내각(Very Catholic Cabinet)'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무척 가톨릭적인(Very Catholic)’인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이든의 많은 정책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해온 세계적 차원의 연대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같은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부합할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로 바이든은 취임 첫날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 복귀,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절차 중단, 인종 평등 보장에 관한 행정명령 등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 주교들의 비판과 저항이라는 공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한편 2021년 미국의 내각과 의회, 대법원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더 많은 가톨릭뿐 아니라 더 많은 유대인과 무슬림, 더 많은 여성, 더 많은 유색 인종이 공적 영역에 진출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은 'WASP'로 약칭되는 미국의 전통적인 지배계층, 앵글로색슨계 백인 남성 개신교도의 몫을 인종적, 종교적, 젠더적, 문화적으로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이든 내각 역시 더 가톨릭이라기보다 더 다양한 정부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른다.
가톨릭은 WASP가 아니었고, 미국 사회의 비주류로 오랫동안 차별받았다. 가톨릭 대통령의 새로운 시대는 그동안 주류에 서지 못했던 다양하고 수많은 약자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고, 더 큰 영향력을 갖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그럴 때만이 바이든의 시대가 부인할 수 없는 더 가톨릭다운(More Catholic), 아주 가톨릭적인(Very Catholic) 정치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참고 기사
National Catholic Reporter, <Joe Biden's very Catholic Cabinet>
America Magazine | The Jesuit Review, <How Joe Biden’s Catholic faith will shape his relationship with Pope Francis—and the U.S. bishops>
America Magazine | The Jesuit Review, <Pope Francis sends greeting to President Biden, contrasting with sharper message from head of U.S. bishops>
America Magazine | The Jesuit Review, <In rare rebuke, Cardinal Cupich criticizes USCCB president’s letter to President Bi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