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인권위원회 2020년 인권주일 자료집 기고
복음의 요구이자 성직의 핵심
“인간의 완전한 발전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더욱 명백하게 한다. 우리 시대에 와서 교회는 이 진리를 점차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은 복음의 요구이며, 인권의 향상이 성직의 핵심이라고 교회는 확신한다.”
교황 바오로 6세가 1974년 주교 시노드에서 전한 메시지 「인권과 화해」 4항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교회는 인권문제에 있어 중립을 지키거나 방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 곧 성직의 핵심이며 복음의 요구라고 본 것입니다. 1891년 반포된 「새로운 사태」로 시작한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에 관한 교회의 강조는 이후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으로 확장되고,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국제적 연대와 협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4년에는 유엔 세계인권선언 25주년을 맞이하며 인권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사목적 적응을 다루는 「교회와 인권」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사회 회칙을 비롯한 인간 존엄성과 인권 존중에 관한 교황 문헌들은 모든 인간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향하는 과정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1년 「새로운 사태」 반포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회칙 「백주년」 에서 인권의 구체적 종류를 나열하며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삶을 살아가며, 자기완성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정신적 물질적 조건들이 바로 인간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함을 명시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권리들의 원천이며 종합적 이해는, 자기 신앙의 진리 안에서 살, 그리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초월적 존엄성에 따라 살 권리로 이해되는 종교적 자유”(47항)라고 강조합니다.
「새로운 사태」 이후 100년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가 20세기 전쟁과 냉전, 경제적 착취와 전체주의적 체제의 폭정으로부터 인간을 옹호하고 메시지의 핵심에 인간의 존엄성을 두었다고 돌아봅니다. 더불어 여전히 교회는 아직도 ‘새로운 것들’과 새로운 도전에 당면하고 있다며 특별히 신앙인들의 노력을 촉구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회칙을 통해 인권의 수호와 증진은 종교적 사명임을 재확인합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는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많은 소중한 생명은 참혹하게 사라졌고, 전쟁과 극단적 전체주의 앞에 인간의 존엄성은 처절하게 짓밟혔습니다. 끔찍한 전쟁을 치른 후에야 세계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하나의 윤리 기준이자 공동의 목표로 모든 인간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명시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이 하나의 규범으로 제시한 인권의 내용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부터 교육받을 권리,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 진보의 혜택을 공유할 권리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이는 「백주년」이 명시한 인간의 권리와도 결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핵심 가치는 바로 ‘자유’와 ‘평등’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의 제1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자유
‘자유’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외부의 강압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는 가장 고전적인 인권 개념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지니고 있고, 이것은 침해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현대 국가의 헌법에는 대체로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인간의 자유는 더 넓고 큰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하심으로써, 인간에게 당신을 닮은 당신 자신의 모습을 새겨두셨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며 가치 있다는 그리스도교 인간관의 근원이 됩니다.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이 바로 인간 존엄성과 자유의 토대”(「자유의 전갈」, VII, 9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론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방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고 하셨습니다. 1986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 「자유의 자각」 26항은 “오직 진리와 정의로 다스려지는 상호 유대가 사람들을 서로서로 이어주는 그곳에, 자유는 참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유대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선은 자유의 목표이며, 진리의 지식에 도달하는 그만큼 인간은 자유롭게 된다고 덧붙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존중하는 성숙한 의식 가운데 현존하시고,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고린 3,17)
단순히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넘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진리와 정의로부터 흘러나오는 자유 안에서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사랑 안에 살아가는 진정한 해방을 의미합니다.
평등
하느님이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인간은 서로 평등하며,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평등합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입니다.”(히브 2,11) 이처럼 하느님 앞에, 하느님 안에서 서로 평등한 인간은 서로를 그에 맞갖은 존중으로 대해야 합니다. 인권 개념에서 평등은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이기도 합니다. 인종, 종교, 성별, 신념, 양심, 나이, 국적, 장애, 빈부, 사회적 신분, 신체조건 등 인간이 가진 고유하고 바꿀 수 없는 정체성을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차별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뿐 아니라 차별의 뿌리가 되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평등은 같아지는 것, 곧 차이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점점 더 다양한 얼굴의 억압과 차별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차별, 종교차별 등의 고전적인 차별의 문제는 극복되지 못한 채 곪아가는 한편, 새로운 차별의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활발해진 이주에 따른 인종차별, 외국인 차별, 종교차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성소수자 형제자매를 차별 없는 평등함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권의 적용 범주와 이해는 「새로운 사태」는 물론 「백주년」 시대의 인권에 대한 이해와는 매우 다릅니다. 우리 각자가 인식의 확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평등을 자신의 이해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동등하되 동질하지 않은, 평등하되 동일하지 않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아름답고 존엄합니다.
발전
2016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 교서 ‘인간 발전(Humanam Progressionem)’을 발표했습니다. 교종은 교회는 그 존재와 활동에서 복음에 비추어 온전한 인간 발전을 촉진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이러한 발전은 정의, 평화, 창조 보전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보화를 돌보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자의 교서를 통해 기존 교황청 내 4개의 부서 정의평화위원회, 사회복지평의회, 이주사목평의회, 보건사목평의회의 권한을 통합한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가 설립됩니다. 새 부서의 역할은 이민, 궁핍한 이들, 아픈 이들, 배척된 이들, 사회적으로 차별된 이들, 무력 분쟁과 자연재해의 희생자들, 감옥에 갇힌 이들, 실업자들, 모든 형태의 노예 살이와 고문의 희생자들에 관한 문제에 답하는 것입니다.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부서인 것입니다.
자의 교서의 제목 ‘인간 발전’, 그리고 새 부서의 이름인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은 ‘발전’에 대한 교회의 감각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발전은 자기 계발이나 스펙 쌓기 따위가 아닌 인간의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이 그 존엄함을 충분히 발하며 더욱 가치 있게 자신을 완성하도록 나아감을 ‘온전한 인간 발전’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보, 참된 발전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향은 1967년 반포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현실을 목도한 바오로 6세는 「민족들의 발전」을 통해 기아와 빈곤에서 해방되려는 민족들의 노력에 대해 응답합니다.
「민족들의 발전」에서 ‘발전’ 역시 단순히 국제 개발과 해외 원조를 통한 경제적·사회적 성장에 머물지 않습니다. 회칙 14항은 “발전은 경제적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이 올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 향상이 전체적이라야 한다. (중략) 가장 중대한 것은 인간이다. 하나하나의 인간, 그 인간들의 집단,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가 중한 것이다.”라고 밝힙니다. 더불어 “발전 향상되어야 할 주체는 완전한 휴머니즘이다. 완전한 휴머니즘이란 개개인의 인간과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이 아니고 무엇이랴?”(42항)라고 명시해 이 회칙이 말하는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함 그 자체임을 말합니다.
진보, 발전을 향한 패러다임은 우리를 끝없는 경쟁과 성장의 욕구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발전이며, 인간 발전은 곧 인간 존엄성의 온전한 발현입니다.
연대
인권과 인간 존엄함을 옹호하는 교회의 힘과 가능성은 또한 ‘연대’의 정신에 있습니다. 우애와 연대의 정신은 파편화되고 다원화되는 오늘날 사회에서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세계적 인권 운동의 흐름 역시 모든 인간은 자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침해될 수 없다는 자유권적 인권(1세대 인권)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노동권, 교육권과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회권적 인권(2세대 인권)을 넘어 보편적 인권의 항구적 존립을 위해 평화와 생태의 지속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발전권(3세대 인권)으로 권리의 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월 3일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에 관한’ 새로운 사회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을 발표했습니다. 회칙은 형제애와 우정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박애와 연대로 확장함으로써 인간 존엄과 공동선, 진리와 자유, 정의의 증진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미증유의 전염병과 이로 인한 세계적 경제 위기 앞에 개개인의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국가는 국경을 닫고 다리가 아닌 벽을 쌓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는 더 깊은 가난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오늘날 세계에서 폐쇄가 아닌 개방을, 교회와 세계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평화를 위한 노력과 창의성을 도모하는 이번 회칙은 교회를 넘어 전 세계에 큰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앞서 인용한 세계인권선언 제1조 역시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라는 말로 끝납니다. 새 회칙의 제목과 세계인권선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모두 ‘형제애’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형제애는 비 동등한 관계 사이의 조건 없는 사랑, 보살핌과 희생의 사랑인 모성애와는 다릅니다. 형제애는 동등한 인간 간에 나누는 우애이자 연대의 상징입니다. 자유, 평등, 온전한 인간 발전은 모든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자유, 평등, 인간 발전이라는 결실은 존중과 연대 더 나아가 사랑을 통해서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 위협받는 형제자매들의 존엄함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존엄함을 위해 우리를 더 깊은 연대의 실천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